이은미의 <어떤 그리움>을 알게 되어서 즐겨 듣곤 했다. 이 노래에 얽힌 기억이 하나 있다.
96년 3월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3개월여의 훈련 기간 중에 초반 절반은 상대적으로 더 강한 때일 데 그런 만큼 노래고 뭐고 아무 생각도 없이 잠시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쉬고 있을 때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나 분명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주변의 몇 명이 같이 부르고 있었다. 당시 교관들이 약간 떨어져 있어서 못 들었길래 망정이지 들었다면 '미친 놈 하나 떴다'고 큰 일 났을 것이다.
원래 노래란 것이 그렇지만 공감을 하고 좋아한다는 것이 직접적인 경험을 반드시 꼭 동반하는 것은 아닌 만큼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가사까지 완전히 내 상황도 일치했기 때문에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오래전부터 이 곡의 가사를 적어가면서 이런 자리에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제는 가사전체를 쓰면 저작권법에 걸리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는 할 수 없다).
특별히 좋았던 부분은 (청승 맞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ㅋㅋ)'~하지만 내 님 떠나고 이젠 나 홀로 남아 그대의 앞길을 비추네'라고 하는 끝 부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씨디의 앨범에 어두운 조명에 이은미의 앉아있는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가락과 잘 조화되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림의 정서는 여성적이라고 중고교 시절에 앵무새처럼 암기했었기 때문에 내가 남자라서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따지고 보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기다릴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선입견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제약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노래는 전체적으로 보면 떠난 님이 돌아오리라고 하는 확신이 담긴 가사는 아니다. 김소월 시에서의 '님'처럼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님이다. 그렇게 떠난 님을 그냥 그리워하면서 그의 행복을 빌어준다는 내용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떠난 님을 생각할 수 있지만 원수처럼 생각하지 않고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사랑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고 들을 때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니 그런 생각을 10년 전에 했었고 세월은 그렇게나 흘렀다.
요즘 와서 알 듯 말 듯하면서도 와 닿는 가사는 그 앞부분의 '사랑은 슬픈 이별보다 아픈 거라고'라는 부분이다.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든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상대가 그런 내 마음을 모르고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렇듯 저렇듯 이 노래는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노래의 가사를 고쳐보겠다는 정도의 의욕은 아니고 상황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하고 궁리하다가 차운하듯이 차제를 해서 한번 지어보았다. 어떻게 보면 나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고 어떻게 보면 또 어울리는 것도 같다.
언젠가
언제부턴가
내 마음 어딘 듯 알 수 없는 곳
깊은 그 곳에서
그 어떤 마음이 피어오른다.
무관심한 듯
생각 없는 듯
내 일에 바쁜 듯
모두 듯일 뿐이다.
난 나에게 묻는다.
상처를 덮기 위해서인가?
뭔가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라 믿는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상처에 상처를 더할 것 같아
몸은 여기에 서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어떤 마음이 피어오른다.
그 어떤 마음은
날마다
날마다
그에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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